꽃의 아름다움이 무르익을 때
이지은
글. 정윤희 작가 / 사진. 스톤김 작가
언젠가 꽃다발을 선물 받아서 작업실에 꽂아둔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시들어가는 모습이 아름다운 거예요.
그래서 버드나무처럼 늘어질 때까지 놓고 봤어요.
조금 시든 꽃이 절정으로 피었을 때보다 더 우아하고, 더 생명력이 강하다고 느꼈어요.
(이지은)
무르익은 아름다움은 어떻게 표현될 수 있을까요? 무르익는다는 건 시간을 두고 서서히 익는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지은 작가님의 작업실에 놓였던 그 꽃다발을 떠올려보세요. 시들어가면서 미세하게 쳐지는 꽃잎과 이파리의 형태, 살며시 탁해지는 빛깔의 변화를요. 그 잔잔하면서도 무수한 변화들을 미술작가는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요?
그러기에 어떤 작가들은 마음에 들 때까지 작업을 수정하고 또 수정합니다. 그의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는 그 완벽한 형상이 도대체 무엇 때문에, 왜 그렇게 자리하게 되었는지 딱히 설명하긴 어렵지만 단지 아직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작가는 수정을 멈추지 않습니다.
이지은 작가님은 그리고 또 그려서 꽃의 실루엣을 완성합니다. 작업을 시작할 때는 실재하는 꽃의 실루엣을 따서 그리지만, 그렇게 단순히 따기만 해서는 작가님의 마음속에 있는 형태가 잘 표현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마음에 드는 형태가 될 때까지 그리는 작업을 반복합니다.
채색도 반복의 연속입니다. 채색이 끝난 유화는 마르는 데 한 달 걸립니다. 그러기에 마르는 동안 수정을 하고 또 할 수 있습니다. 색은 섞으면 섞을수록 탁해져서 시들어가는 꽃의 원숙함은 점점 더 살아납니다. 그렇게 여러 겹 올라간 유화물감이 마르면, 작가님은 샌딩 기계로 유화물감을 갈아내면서 꽃잎의 결들을 표현합니다.
스테인리스 특유의 광택에 매력을 느꼈어요.
스테인리스는 시들어가는 꽃과 대비가 극대화되는 소재예요.
그래서 제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와도 잘 맞았던 재료예요.
(이지은)
채색은 구불구불한 스테인리스 위에서 이루어집니다. 재단은 공업사에서 해오지만, 구부려서 형태를 만드는 건 오로지 작가님의 몫입니다. 몇 가지 도구와 팔 힘을 이용해서 말이죠. 이 작업은 채색과는 달리 여러 번의 수정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스테인리스는 한번 구부러지면 절대로 원래의 형태로 되돌려지지 않거든요.
구부린 스테인리스들을 조립하여 꽃을 완성하면, 채색을 다시 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마르는데 한 달이 넘게 걸리는 유화물감을 다시 한번 올려봅니다. 이지은 작가님의 스테인리스 꽃을 보고 처음에는 스테인리스를 구부리느라 많이 힘드시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인터뷰를 하고 나니 작업에서 힘들지 않은 단계가 없습니다. 하지만 힘든 과정인 만큼, 계획했던 대로 작품이 나오면 쾌감이 정말 크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완성된 꽃을 보고 관객들이 힐링하는 모습을 보는 게 좋다고 합니다.
이지은 작가님은 곧 예정된 아시아프(ASYAAF, 아시아 대학생·청년작가 미술축제) 출품 준비로 바쁜 일과를 보내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옻칠한 소품들도 만들고 있습니다. 옻독으로 종종 고생하지만 천연 재료가 주는 느낌에 점점 더 매료된다고 하네요.
작품도, 우리의 인생도 힘든 과정이 있었기에 아름답게 무르익습니다. 저렇게 생명력을 발휘하고 있는 꽃을 보니, 그 모든 것이 가치 있었다고 말해주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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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지원
이지은동국대학교 미술대학에서 조소를 전공하고 동 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에서 예술치료를 전공하였다. 2014년 서울미술 대상전에서 조각 부문 특별상을 수상하였고, 2023년 송정미술재단 창작지원 작가에 선정되었다.
개인전으로는 2022년 파리 Galerie PHD <CO-EXISTENCE>한불교류전, 2022년 코너 갤러리 《The moment of great season》전, 2021년 학고재 갤러리 《Disguise》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