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그 자리에서 나를 지켜주던 것
도재인
글. 정윤희 작가 / 사진. 스톤김 작가
도재인 작가님의 <꿈 걸음의 여정>은 자신의 내면을 그린 3D 실험 애니메이션입니다. 동굴같이 깊고 어두운 장소에 커다란 손 조각상이 두 줄로 너른 길을 이루고 있습니다. 손 조각상에는 저마다 따뜻한 조명이 박혀있습니다. 손의 질감은 거칠고 형태는 묵직해서 아주 나이가 많은 나무를 연상시킵니다.
이 작품을 만들고 있었을 때 도재인 작가님은 알 수 없는 미래를 향해 끊임없이 도전하고 있었습니다. 온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작업에 매달렸지만 결과는 미미했고 사람들에게 자신이 뭘 하고 있는지 설명하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조용히 내면에 집중해 보니 작가님의 안에는 자신을 비춰주는 따뜻한 불빛도 있었고, 자신을 지켜주던 여러 손길도 있었습니다. 그것은 도재인 작가님에게 희망과 자유를 주었죠.
“작업할 때 컴퓨터 앞에서 가만히 앉아 있지만,
제 내면은 꿈을 향해 전투적으로 움직이고 있어요.”
(도재인)
<꿈 걸음의 여정>은 이제 동굴에서 우주로 배경을 바꿉니다. 근사하게 생긴 미지의 비행 물체 내부에서 커다란 불꽃이 열기구 불처럼 타오릅니다. 이 불은 꿈을 향해 있는 힘껏 나아가고 있는 작가님의 열정입니다.
사슴 다리같이 생긴 형체도 등장합니다. 평화롭게 무리 안에서 풀을 뜯어 먹으며 사는 사슴은 위험한 순간에는 무리를 지어 사자를 공격하기도 하는 전투적인 동물이라고 합니다. 작가님은 그러한 사슴의 습성에 흥미를 느꼈습니다. 작품 안에서 사슴 다리 형체는 천진난만하면서도 열정적으로 이곳저곳 뛰어다닙니다. 비록 작업하는 시간이 길고 외로워도, 작가님을 지켜주는 수많은 존재가 있고, 작가님 안에는 뜨거운 열정이 있으니, 작업도 뛰어놀 듯 마음껏 할 수 있겠죠.
“꿈, 열정 같은 추상적인 개념이 우리 몸속에 흘러들어온다면
어떤 형태를 띠게 될까 생각해 봐요.”
(도재인)
도재인 작가님은 사람들의 내면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래서 평소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잘 살피고 그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주는 편입니다. 그들 중에는 겉으로는 엄청 밝은 모습을 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많이 아파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미국 유학 생활하던 중에도 보통의 사람들보다 좋은 집안 배경을 지녔으면서도 속으로는 우울해하는 외국인 친구를 여럿 만났습니다.
작가님은 그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지 고민합니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들려줄 이야기를 논리정연하게 글로 정리하는 것은 아닙니다. 몇 가지 키워드가 정리되면 곧바로 시각적인 작업을 시작합니다. 그들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꿈을 시각화하기도 하고, 때로는 외부의 에너지가 그들의 내면으로 흘러 들어가는 장면을 그립니다. 이 과정에서 종교, 과학, 인체 등에 관한 영상과 사진들을 참고합니다. 대략적인 형태가 그려지면 가상 3D 공간에서 다양한 질감을 입혀봅니다. 영상 위에 사운드도 입힙니다. 도재인 작가님은 질감과 사운드를 가지고 놀 때가 특히 재밌습니다.
도재인 작가님은 다행히 최근에 자신의 작업을 선보일 좋은 기회들을 만났습니다. 그중 <홍연길 프로젝트>는 연희동에 거주하시는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담아 콘텐츠를 만드는 프로젝트였습니다. 이를 계기로 지역에 상주하면서 지역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러던 차에 스튜디오D에 입주하게 되었고, 지금은 석관동에 관한 이야기를 만들고 있습니다.
또 이곳에서 오랫동안 손 놓고 있었던 드로잉 습작도 하고 있습니다. 워라밸이 깨져서 개인적으로 힘든 시기를 겪고 있었는데, 작업실을 얻어 작업 속도가 빨라졌고 작업량도 부쩍 늘었다고 합니다.
아무도 나라는 사람을 알아주지 않는 것 같아 한없이 고독한 순간이 있습니다. 그럴 땐 누군가 알아주지 않아도 작품으로써 여러분의 꿈을 지지하고 있는 예술가들이 있다는 걸 기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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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D 입주작가
도재인도재인은 미디어 아티스트로 시카고예술대학(SAIC) 뉴미디어과/아트&테크놀로지과(복수전공) 와 덕성여자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를 졸업했다. 무기력한 현대 사회 속 보이지 않는 감각, 감정, 꿈을 시각화하여 더 넓은 차원의 긍정적 세계로 나아가도록 3D 실험 애니메이션, 미디어파사드, XR, 오디오 비주얼 퍼포먼스 공연 등으로 가상과 실제 세계를 융합하여 표현한다. <숨 쉬어 가다>(아트코리아랩, 2023), <흐르는 미래>(코엑스 미디어 및 파르나스 타워, 2023), <도전! 실버벨 프로젝트-토탈미술관 예비예술가 화원 : 홍연길>(10의 n승, 2023), <Digerati Emergent 미디어 페스티벌>(Digerati, 미국, 2023), <Kinomural 미디어 페스티벌>(Kinomural, 폴란드, 2020) 등을 전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