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정착하지 못한 우리들의 이야기
황동욱
글. 정윤희 작가 / 사진. 스톤김 작가
지금 내가 찍을 수 있는 최선의 작품을 찍고 있어요.
나와 동료들의 진솔한 이야기가 담긴 작품을요.
(황동욱)
황동욱 감독님의 <캐리어우먼>은 조금은 낯선 형태의 영화입니다. 실제 감독, 작가, 배우인 세 사람이 안감독, 백작가, 이배우 역을 맡아서 각자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황동욱 감독님과 이 세 사람은 서로를 잘 알고 있는 동료입니다. 황동욱 감독님이 시나리오를 썼지만, 어떤 장면에서는 배우들에게 상황만을 던져주어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감독, 작가, 배우로 살아가는 이들의 진솔한 이야기가 영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서사로 떠오릅니다.
영화로서만 표현할 수 있는 묘한 감각이 있어요.
이미지, 사운드, 편집을 가지고 노는 거죠.
(황동욱)
영화 <캐리어우먼>은 묘하게 재밌습니다. 다큐멘터리처럼 담담하게 흐르다가 갑자기 기이한 설정으로 넘어갑니다. 커다란 모과나무 아래에서 이배우 역을 맡은 이연주 배우가 두 사람에게 말합니다.
“배우들끼리는 그런 얘기를 해. 우리는 입 벌리고 서서 사과가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는 거야, 하염없이. 나에게도 사과가 오지 않을까? 내 옆 옆 사람이 그 사과를 가지고 가. 그리고 또 그렇게 기다리는 거야. 입술이 마를 때까지 입을 벌리고 그 나무 밑에서.”
배우의 말끝이 다 흐려지기도 전에 갑자기 화면은 전환되고 세 사람은 하얀 천을 뒤집어쓰고 나무에 매달린 단 하나의 열매를 향해 크게 입 벌리며 ‘아~~~’하고 외칩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이배우의 내레이션이 흐르고 슬프고도 비장한 음악도 따라 흐릅니다.
“그래서 힘든 것 같아. 자꾸 수동적이기 싫은데 수동적이게 되는 것... 조금 더 주체적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아 요즘.”
저와 많은 동료들이 이동하는 삶을 살고 있어요.
(황동욱)
<캐리어우먼>은 군산에서 찍은 영화입니다. 황동욱 감독님이 교통사고로 다쳐서 깊은 슬럼프에 빠져 있을 때, 백요선 배우님이 군산으로 오겠다는 제안을 해줘서 찍게 되었습니다.
세 사람은 군산 곳곳을 여행합니다. 각각의 장소에 놓인 것들은 그들을 새로운 설정으로 안내합니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이배우가 캐리어를 끌고 넓은 평원을 가로질러 갑니다. 제목 <캐리어우먼>은 캐리어를 끄는 이 여자를 말합니다.
황동욱 감독님은 자신과 동료들이 자꾸 어디론가 이동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캐리어우먼>은 바로 황동욱 감독님과 동료들에 대한 이야기이며, 감독님에게는 애틋한 영화입니다. 감독님은 이 영화로 긴 슬럼프를 빠져나왔고,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되었습니다. 백작가 역을 맡은 백요선 배우는 이 영화를 찍은 후 실제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스튜디오D에 입주하면서 황동욱 감독님은 잠시나마 생활공간과 분리된 자신만의 작업실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현재 성북구에 거주하고 있는 예술가들과의 작업으로 바쁜데요, 배우들에게 연기 수업을 하며 그 안에서 영화를 만드는 안선경 감독님과 함께 차기작을 준비 중입니다. 또한 연극 연출가인 기국서 님의 ‘관객모독’이라는 연극 작업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매번의 촬영 분량이 만만치 않지만 스튜디오D에서 바로 백업을 하고 그 자리에서 편집까지 마칩니다. 이곳에 입주할 때만 해도 이곳에서 작업하는 게 이렇게까지 좋을 줄 몰랐다고 합니다.
조금 더 주체적으로 살고 싶은 이들의 노력이 자꾸 그들을 낯선 장소로 이동하게 합니다. 또 다른 장소에서 새로운 영감을 얻는 가운데에도 간혹 꿀맛 같은 위로가 이들을 찾아주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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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D 입주작가
황동욱독일에서 태어나 유년기를 보냈고, 건축을 전공하여 회사생활을 하다가 뒤늦게 다큐멘터리로 영화에 입문하였습니다. 현재는 작은 규모로 진행되는 극영화 작업에 관심이 많으며, 여전히 각본/감독/촬영/사운드/편집을 홀로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