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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음 인형

이예원

글. 정윤희 작가  /  사진. 스톤김 작가

이예원 작가님이 버스를 타고 어딘가로 가고 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한 술 취한 아저씨가 버스에 올라타더니 큰소리로 욕설을 하기 시작한 겁니다. 그 거친 말들이 이예원 작가님을 향한 것은 아니었지만 작가님은 순간 많이 두려웠습니다.
작가님은 두려움을 극복해 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그 아저씨께 사탕을 하나 드렸다고 해요. 그랬더니 그 아저씨는 소리를 낮추고 작가님을 친절히 대해주었습니다.


두려움을 극복하는 일은 모두가 안고 있는 숙제이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부지런히 해내지는 않습니다. 두려움의 극복은 <no, is>라는 작품의 주제이기도 한데요, 무서운 소리를 인형으로 만드는 작업입니다. 뾰족뾰족한 선으로 거칠게 그려진 이 무시무시한 존재들은 이제 인형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공포의 대상은 만질 수도 없고, 볼 수도 없고,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예측할 수도 없지만, 이제 친근한 인형이 되었으니 누구든 그것을 직면할 용기를 내어볼 것입니다. 그래서 작가님은 천을 한 땀 한 땀 바느질하고 솜을 꾹꾹 채워 만든 인형을 만듭니다.

언젠가 인형을 풀장에 가득 채워서 관객들이 그 속에 숨을 수 있게 해주고 싶어요.
사실 제게 필요한 공간이기도 해요.
(이예원)

인형이 된 괴물들은 사실 좀 귀엽습니다. 그 풀장 속으로 들어가 보고 싶네요. 인형들 속에 파묻혀서 내가 감추어지면 끝내 마주할 수 없었던 또 다른 나를 바라볼 수 있게 될까요?

이 인형들은 두려움의 대상이었지만, 어쩌면 나를 숨겨주고 대리해 주는 느낌이 들었어요.
어쩌면 이 인형들이 나로 인해 억압받았던 것 같아요.
(이예원)

평소 무서운 꿈을 잘 꾸는 작가님은 잠에서 깨면 곧바로 꿈속에서 본 장면들을 드로잉 하는 편입니다. 그렇게 해서 꿈을 기록한 드로잉 작품들이 완성되었습니다. 꿈 기록 드로잉은 자로 잰 듯 반듯하고 깔끔하게 그렸었는데요, 자신의 그림체에 답답함을 느끼면서 선을 자유롭게 풀기 시작했습니다.

이예원 작가님은 관객들과 생생하게 소통할 수 있는 미디어와 퍼포먼스 작업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올해 성북문화재단 지원으로 퍼포먼스 영상을 제작할 예정인데요, 영상 속 인물은 횡단보도, 지하철역 등 다양한 장소에서 줄넘기를 할 것입니다. 줄넘기하는 사람은 쉴 새 없이 뛰고 돌리며, 아슬아슬하게 줄넘기 안에 머무릅니다. 작가님은 작업을 위해, 치유를 위해, 그리고 존엄을 위해 자신에게 꼭 필요한 최소한의 공간을 그처럼 치열하게 지키고 있다고 해요.

얼마 전부터는 디제잉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인형을 만들고 남은 천 조각들을 레진으로 이어붙여서 나무줄기를 만들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이 나무들로 작은 숲을 만들고 그 안에서 디제잉을 해보고 싶습니다.
이예원 작가님 덕분에 트라우마의 극복이 즐거운 체험이 될 수 있겠어요!

  • 스튜디오D 입주작가
    이예원

    고려대학교 디자인조형학부를 졸업하고, 동대학교 일반대학원에서 조형문화예술과 석사 과정에 있다. 2020년 동탄아트스퀘어에서 <Nature Magic> 전시를 했고, 2023년 청년예술청 그레이룸에서 진행된 연극 <상상력결핍은곤란합니다>에서는 무대 미술을 맡았다. 2020년 정부세종청사 문화관에서 주최한 <세종대왕과 음악, 취풍형 망원노래> 전시에서는 큐레이터를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