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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맷하시겠습니까

보이저런처

글. 정윤희 작가  /  사진. 스톤김 작가

로봇과 인간이 공존하는 지구입니다. 그런데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났고, 인류는 멸망해버렸습니다. 하지만 로봇들은 여전히 지구에 남아 인간이 부여해 준 역할을 실행합니다. 보물을 캐는 일, 무기를 개발하는 일, 우주를 탐사하는 일…. 그렇게 500년이 흘렀고, 로봇들은 자신들이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의문을 갖기 시작합니다.


보이저런처의 연극 <포맷_FORMAT>의 플롯입니다. 이 로봇들에게는 포맷 기능이 있어요. 포맷 버튼을 누르면 자신에게 부여된 역할을 지울 수 있습니다. 하마몬이라는 로봇이 용기 있게 포맷 기능을 실행하고, 다른 로봇에게 이 기능이 있다는 사실을 알립니다. 포맷 기능을 알게 된 로봇들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탐색해 보기로 했어요. 그러다가 로봇을 떠올렸어요.
(보이저런처의 김연준 대표)

보이저런처의 김연준 대표는 인간의 자율성과 수동성에 대해서 고민하면서 이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이 주제에 대한 팀원들의 생각이 확장되면서 <포맷_FORMAT>은 변형에 변형을 거쳤고, 올해까지 여덟 번 상연되었습니다.
김연준 대표는 초등학교에서 연극 수업을 하면서 아이들을 만나는 기회가 많다고 해요. 그런데 완벽주의를 지향하는 어른들의 세계 속에서 아이들 역시 완벽주의자로 성장하며 점점 더 실수를 두려워하게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아이들의 모습은 곧 자신의 모습이기도 했습니다.

포맷은 해야 하는 것들로부터 해방된다는 것을 의미해요. 부를 쌓아야 하고,
성공을 해야 하고, 나만의 재주가 있어야 하고….이런 생각들로부터 벗어나면 전 무엇을 하게 될까요?
(보이저런처의 김연준 대표)

처음에는 이 작품을 통해 타인에 의해 떠맡게 된 역할을 벗어버리자고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여덟 번째 공연에서는 포맷에 대한 가치 판단은 관객들의 해석에 맡기기로 했습니다. 포맷 버튼을 눌러야 한다는 주장 역시 관객들에게는 또 다른 억압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주인공 쿠라쿠라는 결국 포맷 버튼을 누릅니다. 포맷 버튼을 누르고 싶은 분에게는 용기를 주기 위해, 그리고 누를 수 없는 분에게는 대리 만족을 위해 이 장면은 극적으로 표현되었죠. 리셋 된 세상이 아름다운 음악과 함께 펼쳐집니다.

<포맷_FORMAT>에 등장하는 로봇들은 정크아트 작품들입니다. 깡통, 플라스틱 용기 등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물건들로 만들어졌습니다. 이런 물건들은 김연준 대표님의 어린 시절 추억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무거운 마음으로 오랜 시간 책상에 앉아 있어야 했지만, 다행히 책상 위에는 손을 뻗으면 언제든 잡을 수 있는 여러 물건들이 놓여있었죠. 그것들을 가지고 놀며 대표님은 상상의 나래를 펼치곤 했습니다. 대표님은 이 공연이 관객들의 일상 속 놀이로 자연스럽게 확장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습니다.
보이저런처는 청소년들이 자신을 발산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캡쑝콜라텍>을 기획하기도 했습니다. 보이저런처의 지하 작업실을 콜라텍으로 꾸미고 동네 청소년과 주민들을 불렀습니다.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아무 의도도 갖지 않고, 온전히 춤을 추는 시간이었습니다. 반응은 아주 뜨거웠죠.

보이저런처는 성북문화재단의 지원으로 매달 각기 다른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모두 관객들과 소통하는 체험형 프로그램입니다. 6~8월에는 초등학생과 함께 엮는 연극 <판타지아 탱크>를, 7월에는 <캡쑝콜라텍>을, 9~10월에는 중년 남성과 함께 엮는 인형극 <톤톤인형극장>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 밖에도 경기상상캠퍼스에서 <숲토리>라는 전시를 진행하고 있고, 선유도공원에서는 <계단:STEPS>와 <리어카:ENCOUNTER>라는 거리극을 진행 중입니다. 이렇게 일을 사랑하고 또 바쁘게 일을 하는 건 포맷의 결과일까요? 중요한 건 언제든 우리 힘으로 그 버튼을 누를 수 있다는 사실일 겁니다.

  • 제작지원
    극단 보이저런처
    대표 김연준

    보이저런처는 아동 청소년 연극 창작 단체이다. 정크아트로봇인형극 <포맷_FORMAT>은 2022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어린이 청소년을 위한 예술지원사업에 선정되었고, 2024년에는 서울문화재단 창작지원사업 A트랙에 선정되었으며 2025에는 유니마세계총회, 춘천 세계인형극축제에 참가한다. 2024년 아동극 <설문대할망과 벨벳두더지>를 상연하였고, 2024년 선유도도서관 재개관 기념 참여형 기획전시 <플래닛퀘스트 : 우주평화위원회 제8차 회의>를 진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