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치
#사운드

사물의 시

조승호

글. 정윤희 작가  /  사진. 스톤김 작가

사라지는 소리에 남은 자리
그걸 매일 밤마다 생각하며 지낸 일은
우리의 상상으로, 고리타분한 친구들로
우리의 조급함, 강박, 그리움들로
돌아 마주칠 수 없는 것과 충격을 입을 수 있다면
이젠 이 고장 난 빛이
마치 내게 모든 걸 설명해 주는 것만 같아.

(개인전 《너는 고장 나지 않았으면 좋겠어》의 퍼포먼스 내레이션 일부)


《너는 고장 나지 않았으면 좋겠어》는 조승호 작가님의 개인전 제목입니다. 전시 공간이자 퍼포먼스의 무대인 어두운 공간에 다양한 구조물들이 놓여 있습니다. 높이와 폭이 크지만 어딘가 앙상한 이 구조물들은 퍼포먼스가 진행되면서 방향과 위치를 바꿉니다. 작가님이 작업한 사운드를 배경으로 내레이션이 천천히 흐르고, 작가님은 구조물들을 움직이거나, 그 안으로 들어가거나, 그 위를 오르내립니다.
작가님이 사물을 감각하는 행위입니다. 작가님은 카메라를 들고 다니거나 어딘가에 두고 카메라의 시선은 전시 공간에 실시간으로 송출됩니다.

조승호 작가님은 학부 때 비디오와 사운드를 전공했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오래된 기계들을 다뤄왔고 기계들은 한때 작가님에게 친구 같은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너는 고장 나지 않았으면 좋겠어》를 준비하던 무렵 작가님은 이 기계들과 멀어진 자신을 발견합니다.
낡은 기계들의 잦은 고장에 속을 썩기도 했고, 기계들의 유지와 보관은 지치는 일이었습니다. 무엇보다 형태가 없는 퍼포먼스를 오랜 시간 준비하면서 많이 답답했습니다. 퍼포먼스는 인력과 장비, 공간이 필요했기 때문에 작업을 하다 보면 혼자서 감당할 수 없는 너무 많은 변수들이 존재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퍼포먼스를 마치고도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설치 작업을 시작하면서, 작가님은 내면이 조금씩 채워지는 경험을 하였습니다. 머리가 아닌 손과 몸을 움직이는 작업은 작가님에게 즐거움을 주었고, 퍼포먼스나 음악 작업을 대하는 태도를 가볍게 해주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물들은 작가님에게 어떠한 느낌을 전합니다. 기계에 친밀감을 가졌을 때에도 같은 경험을 했습니다.

무언가를 볼 때 그것이 하는 말이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위치에 따라 다르고, 보는 방향에 따라서도 달라져요.
주변 환경 때문에 서서히 스스로 변하기도 해요.
(조승호)

개인전 《Stay Mute》는 처음으로 소리나 기계 없이 설치작품으로만 꾸려진 전시였습니다. 사물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제 자리에 차분하게 놓여 있습니다. 언뜻 보면 이들이 모두 침묵하고 있는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깨지거나 벌어지거나 제멋대로 휜 형태를 가지고 치열하게 무언가를 말하고 있네요.

이 전시에 <변절자>라는 작품이 있었어요.
이도 저도 아닌 상태, 갈팡질팡하는 마음, 앞뒤가 없이 모호한 실체…,
이와 같은 '상태'를 언어로 표현한다면 변절자가 아닐까 싶었어요.
(조승호)

조승호 작가님은 스튜디오D에서 드로잉과 글쓰기를 주로 하고 있습니다.

이곳에 있으면 왠지 서울이 아닌 곳에 있는 것 같아요.
제가 매일 지나치던 골목에 있지만 멀리 떠나온 느낌을 주는데,
그건 아주 잠깐의 자유를 주는 공간이라서 그럴 수도 있어요.
(조승호)

조승호 작가님은 10월 23일 성북문화예술교육센터에서 도재인 작가님, 손현록 감독님과 단체전 《우리 동네 보는 이야기》를 오픈할 예정입니다. 이 동네에서는 어떤 감성을 느끼셨는지 궁금해지네요.

  • 스튜디오D 입주작가
    조승호

    계원예술대학교 융합예술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조형예술 전문사에 재학중이다. 2023년 페레스프로젝트에서 개인전 《Stay Mute》를 했고, 2022년 플랫폼엘에서 《너는 고장나지 않았으면 좋겠어》를 했다. 2024년에는 백남준아트센터에서 단체전 《빅브라더 블록체인》에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