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풍요
김이린
글. 정윤희 작가 / 사진. 스톤김 작가
세상을 바라보는 일은 내면의 작용입니다. 일에 대한 열정과 사랑이 차오르면, 동공이 확대되듯, 시각 작가의 감각은 활짝 열립니다. 그를 둘러싼 일상의 풍경들은 시시각각 소재가 됩니다.
작품 주제도 일상에서 찾고 있어요.
가족, 친구들, 제 주변에 있는 물건이 다 제게 영감을 줘요.
(김이린)
특히 김이린 작가님은 식물을 좋아합니다. 아파트 주변에 심어진 밤나무, 복숭아나무, 감나무, 모란꽃, 능소화는 계절마다 작가님에게 큰 즐거움을 줍니다. 계절이 바뀌면 꽃과 풀을 마중하는 심정으로 먼저 기다릴 때도 있습니다.
커다란 나무의 몸통과 줄기는 흥미롭습니다. 부드럽게 휘어진 몸통과 뻗은 가지는 사람들의 모습과 닮았습니다. 작가님은 주변에서 늘 보게 되는 나무의 모습에서 자신이 매일 만나는 사람들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그래서 작가님은 사람을 닮은 나무 캐릭터를 창조해 일상의 행복 속으로 초대했습니다. 구불구불한 실루엣의 나무 사람을 판지로 만들어 의자나 침대 위에 뉘어 놓습니다. 나무들이 쉬고 실내 공간은 다채로운 색과 패턴들이 콜라주 되어 있습니다.
색은 김이린 작가님이 최근 가장 많이 연구하고 있는 주제입니다. 자신의 작품이 관객에게 직관적으로 다가가길 바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림을 잘 모르시는 분들도 색이 예쁘다며 제 작품에 다가오시더라고요. 그분들을 보는 게 작가로서 행복해요.
(김이린)
작가님이 자연물의 형태를 단순화시키는 것도 색을 좀 더 아름답게 쓰기 위해서입니다.
최근에는 좀 더 사실적인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화단을 한가득 채우고 있는 무수한 줄기와 잎사귀, 꽃들을 캔버스에 펼쳐 놓습니다. 休木 14길 32, 살면서 가끔 지나갈 법한 어느 장소의 주소와도 같은 작품 제목입니다. 특별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늘 우리 곁에서 생동감을 주는 풍요로운 장소 말입니다.
김이린 작가님은 캔버스에 되도록 정성을 들이고 싶습니다. 캔버스에 마대를 씌우고 그 위에 한지와 종이 죽을 입힙니다. 그럼 표면에 요철이 생겨 깊이 있고 차분한 느낌을 줄 수 있습니다. A4 용지를 쓸 때도 있는데, 이때에는 종이의 이음새가 느낌 있는 선이 됩니다. 최근에는 겹겹이 채색하여 말린 뒤 사포로 쓸어내며 질감을 내고 있습니다. 흰색 물감 대신 도자기 재료인 백토를 쓰면 톤이 차분해집니다.
작가님은 하반기 성북문화재단의 지원으로 관객과 소통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형태를 단순화하고 색을 고민한다는 건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는 일과도 같습니다. 참여하는 분들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식물들을 스케치하고 채색하면서 오브제를 만들어 가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작가님은 사람들의 색을 쓰는 방식을 관찰하며 색에 대한 연구도 진행할 예정입니다.
열정이 차오른 시각 작가에게 이 모든 과정들이 커다란 삶의 영감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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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지원
김이린동덕여자대학교 회화과(한국화 전공) 박사과정 재학 중이다. 일상에서 관찰한 자연물과 직접 경험한 휴식 양태를 주제로 한지, 흙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여 작업하고 있다. ㈜ 현대차 정몽구 재단 ONSO ARTIST OPEN CALL 2023에 선정되었고, 겸재정선미술관 제11회 겸재 내일의 작가로 선정되었다.